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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섹시 디바! 김완선 9집으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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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 작성일05-11-03 14:30 조회9,0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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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한국의 마돈나, 한국 최고의 섹시 디바, 특유의 섹시한 음색, ‘댄싱퀸’ 이라 불릴만큼 화려한 춤솜씨, 눈매가 치켜 올라간 독특한 외모… ‘김완선’을 말할 때 수식어처럼 붙는 문구들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수식어로 20년간 우리 음악계에서 활동한 ‘김완선’ 이라는 가수를 단정짓기에는 서운함이 없지 않다. 20년이란 세월이 짧지 않듯이 그녀의 20년간 가수 활동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986년 ‘오늘 밤’이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화려하게 데뷔해 20년이란 긴 세월동안 그녀는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1집부터 8집까지 그녀의 음악활동은 대중이 인식하는 것만큼 그리 단조롭지 않다. 현란한 댄스에 묻혀 그녀의 음악성이나 메시지가 전달되기에는 어쩌면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가 그녀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가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이제 음악하는 가수 김완선으로 제자리를 찾고 싶은지도 모른다. …앨범의 제목에서도 그녀의 의지와 바램이 느껴진다. 돌아간다…어쩌면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그 시절의 순수한 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녀는 이제 우리 대중 음악계의 하나의 ‘브랜드’고 ‘아이콘’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만들고자 했던 모습이었을 수도 있고 대중이 바라던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 밑바탕에는 그녀가 음악을 하는 가수라는 진실이다. 현란한 춤솜씨나 독특한 외모는 어쩌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나 때로는 그 부수적인 것들이 원래 본바탕에 있는 근본적인 것들을 없애거나 잊어버리게 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춤 잘추고 매력적인 여자 가수다. 그녀가 노래부르지 않았다면 그녀의 춤도 외모도 없다. 우리는 이제 그녀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 그녀만이 가진 음색으로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멜로디에 담아 대중과 만나려고 한다. 한번쯤 귀기울여 들어보자…그녀가 뭐라고 하는지…그녀의 열 일곱엔 무슨 생각을 했는지…지금 그녀는 어떤 맘으로 살고 있는지…20년이란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 그만큼 성숙해진 그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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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9집
contents of Kim Wan Sun 9th album \"rEturN\"

김완선 9집 앨범 은 임창정, UN, 김현성등의 앨범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곡가 원상우가 프로듀싱 했다. 원상우, 손무현의 곡들과 원태연, 한경혜, 지완이등이 작사가로 참여해 총 10곡과 1곡의 보너스 트랙으로 총 11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앨범의 장르는 락을 기본으로 하는 팝발라드로 부드럽고 편안한 곡들로 구성되었으며 8집까지 댄스 장르 위주의 음반활동을 했던 김완선에게는 큰 변화와 모험을 감행한 앨범이다. 하지만 1집부터 6집까지의 프로듀서들이 산울림의 김창훈(1,2집)을 비롯하여 이장희(3집), 하광훈(4집), 손무현(5,6집) 등 모두 락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7, 8집의 댄스 앨범을 제외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김완선을 댄스가수로만 인식하는 우리의 편견에 ‘의외성’이 있다.

20년 가수 활동을 맞는 김완선은 지금까지의 가수 생활이 자신의 의지나 의도에 의해서가 아닌 데뷔시절에는 매니저에 의해 7,8집의 경우 제작자들의 의도대로 만들어져 스스로 자신의 음악색깔이나 메시지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이 ‘Return’인 것도 20년간의 가수 생활속에서 느꼈던 무지와 혼돈을 통한 시행착오, 실패, 좌절, 방황의 시간들을 겪고 이런 과정속에서 새로운 ‘가수’ 또는 ‘뮤지션’ 으로 돌아왔다는 20년간의 가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데뷔하여 너무 빨리 스타가 돼버린 가수 김완선은 17살 어리고 무지하고 가수가 되고 싶은 열정만을 가진 순수하기만 한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그렇게 20년을 대중앞에 서 왔다. 이런 스스로의 자책과 아쉬움을 노래한 곡이 타이틀곡인 세븐틴(SEVENTEEN/ 원태연 작사, 원상우 작곡)이다. 원태연과 원상우는 최근 UN의 ‘그녀에게’를 함께 작업해 빅히트 곡을 만들어냈다. “이제서야 열일곱의 나를 배웅합니다”라는 카피를 담은 9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세븐틴’은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 모습을 감싸고 안아 포용하며 좀더 성숙하고 편안한 현재의 김완선이 열일곱의 어린 김완선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는 희망과 기대감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세븐틴’ 이외에도 ‘서른의 노래’(손무현 작곡, 한경혜 작사), ‘모차르트 듣는 여자’(원상우 작곡, 한경혜 작사) 등의 곡을 통해 자전적인 의미를 담는 노래들이 수록되었으며 김완선 본인이 직접 작곡한 ‘처음 이별하는 듯’, ‘White Wine’ 도 수록되어 있다. 이번 앨범은 미국의 오아시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을 진행해 완성도 높은 작업을 거쳤다. 오아시스 레코딩 스튜디오는 휘트니 휴스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퀸, 케이시 앤 조조 등 내노라하는 미국 팝가수들의 앨범 작업을 한 곳이다. 또한 자켓과 뮤직비디오 촬영도 미국 현지에서 이루어져 자연스럽고 이국적인 이미지들로 제작 되었다.

김완선 9집 앨범 을 통해 우리는 좀더 편안하고 좀더 자유로운
‘뮤지션’으로 돌아온 한국의 마돈나, 한국 최고의 디바 ‘김완선’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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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of Kim Wan Sun


1980년대 후반 댄스 음악의 열풍 속에 데뷔,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최고의 섹시 스타로 군림.
1990년대 중반에는 잠시 한국 가요계를 떠나 대만 시장에서 활약
2002년부터는 새 앨범을 내놓고 다시 의욕적인 국내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3년 누드 화보집을 발표해 화제


김완선(본명 김이선)은 1969년 생으로, 아직 앳된 학생이던 1983년부터 일찌감치 백댄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인순이의 백댄싱 팀인 ‘인순이와 리듬터치’에 소속되었는데, 유연하고 날렵한 춤솜씨와 매력적인 외모로 금새 가요계의 관심을 끌게 된다. 결국 1986년에 산울림 출신의 김창훈의 지휘 아래 데뷔 음반 [김완선 1집]을 내놓고 본격적인 가요계 정복에 나서게 된다. 여기 수록된 ‘오늘 밤’이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김완선은 그 해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가수상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 김완선은 특유의 섹시한 음색과 ‘Dancing Queen’으로 불릴 만큼 화려한 춤솜씨, 그리고 눈매가 위로 치켜 올라간 독특한 외모를 무기로 순식간에 최고의 신예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당시 대다수의 가요와는 차별화되는 고급스러운 음악은 다른 댄스 가수들과 김완선을 확실히 구별시켜 주었다.

1집의 성공을 발판으로, 이듬해인 1987년 김완선의 2집 [나홀로 뜰 앞에서]가 나오게 된다. 또다시 김창훈이 프로듀스한 이 음반 역시 ‘나홀로 뜰앞에서’가 히트했고, 댄스 가수는 1, 2집이 한계라는 세간의 평가를 불식시켰다. 또한 2집 활동은 김완선에게 그 해 KBS 가요 대상 가수상의 영예를 데뷔 2년 만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다. 두 장의 음반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그는 1988년에는 이장희와 작업한 3집 [나홀로 춤을 추기는 너무 외로워]를 통해 성공을 이어 나갔고, 1989년에는 하광훈과 함께한 4집 [이 세상 슬픔 가운데]를 발표하며 음악적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을 선보였다. 이 기간 대부분의 가요 시상식은 김완선의 독무대가 되었고, 김완선에게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90년, 김완선은 또 한번의 ‘커리어 하이’를 일구어 낸다. 그는 신예 작곡가 손무현과 작업하는 일종의 모험을 단행하는데, 이 5집 [가장무도회]에 수록된 ‘가장무도회’,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가 데뷔 이래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손무현과 윤상 등이 함께한 백밴드 ‘실루엣’을 대동한 독특한 무대 연출은 댄스 가수답지 않은 색다른 시도로 평가 받았다. 무엇보다 젊은 음악인들의 세련된 감각이 만들어낸 도회적인 음악은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5집은 김완선에게 있어 연예 활동의 정점이 되었다. 1992년에도 손무현과 함께 6집 [애수]를 발표하고 인기몰이를 이어 나갔지만, 결코 5집의 성공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국내에서의 활동에 어느 정도 한계를 느낀 김완선은 1994년부터 대만 시장 공략에 돌입하며, ‘진위엔시안’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한류’ 스타로 활동을 시작한다. 1994년의 대만 시장 1집 [The First Touch]가 그 단초가 되었고, 1995년에는 대만 4대천왕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음반 [Sayonara]를, 1996년에도 3집 [미미후후(迷迷糊糊)]를 내놓으며 큰 성공을 일궈 냈다.

1996년은 김완선이 오랜만의 7집을 내놓고 한국 가요계에 돌아온 해이기도 했다. 신예 작곡가 윤일상과 작업한 7집은 ‘탤런트’라는 히트곡을 만들어내며 김완선의 여전한 인기와 실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이 때부터 김완선은 사업가로서의 능력도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오룡비무방’이라는 혼성 댄스 그룹을 발굴하여 제작자로의 활동도 보여주었다.

이후 6년 가량 가요계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완선은 2002년 새 앨범 [S]를 내놓고 또 한번 가요계 공략에 나섰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김완선은 여전히 빼어난 춤 솜씨와 무대 장악력을 선보였고, 음반 수록곡 가운데는 “Shell We Dance’가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03년에는 누드 화보집을 발표하면서 왕년의 섹시 스타로서의 위용을 다시 한번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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