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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 자매’ 양희은·양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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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 작성일04-03-30 13:47 조회7,8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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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희은,탤런트 양희경 자매가 한 무대에 선다.

4월 30일부터 5월 16일까지 공연될 가수 양희은의 데뷔 33주년 기념 뮤지컬 \'울 언니 구식 이야기\'에 양희경이 내레이션을 맡게 된 것.

5년 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석우,양희은의 여성시대\' 아침방송을 하고 있는 양희은. 그리고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 연장 공연을 2개월 이상 거뜬히 이어나가고 있는 양희경. 쉰을 넘긴 두 자매의 에너지는 멈출 줄을 모른다.

두 분 체력이 장난이 아니신 것 같아요.

희경 체력은 없으나 정신력은 있죠.
희은 (양희경을 툭툭 치며) 야! 윤여정 언니가 했던 얘기 해.
희경 그럴까? 예전에 탤런트 윤여정 언니가 우리 자매더러 한다는 말이 “이 계통에 일하는 형제, 자매 탤런트나 가수들이 꽤 있지만 너희는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니고, 몸매가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당발도 아닌데 오십이 넘어서까지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준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이러더라고.

굴곡 많았던 유년을 지켜준 자매라는 끈

희은 어렸을 땐 이혼의 첨단을 걷는 부모님 밑에서, 결손 가정의 아이들 셋이 서로 보듬어주며 살았죠. 어렸을 땐 둘째 희경이랑 막내 희정이가 친했고, 나이 드니까 같은 일을 해서 그런지 희경이랑 나랑 친해지더라고. 세 자매가 유형이 비슷해. 희경이가 자기 계발을 많이 하고, 나는 맏이라 그런지 희생적이고….

희경 난 첫째와 막내 사이에 끼어있는 샌드위치였다고. 내가 필요한 건 내가 챙기니까 언니가 보기에는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근데 내가 안 챙기면 나를 누가 챙겨주겠어?

희은사실 두 살 차이라고 해도 우리 집은 워낙에 군기가 세서 언니는 완전 하늘이었어. 부모님이 위계질서를 잡아 놓으셨지. 그래서 니들이 내 물건은 건드리지도 못 했잖아.

희경 난 언니의 동생으로 살아가는 게 고달팠어. 항상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니까. 언니한테서 벗어나는 게 소원이었다니까. 우리 집은 위계질서가 너무 확실해서 언니한테 반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게 너무 많이 쌓여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피 터지게 싸운 적도 있었지. 내가 대들어서 손가락 다 접질리고…. 그래 놓고 오후에 만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냥 넘어갔지 뭐.

두 분이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입담이 좋으셨어요?

희은 우리 엄마 말에 따르면 난 돌 되기 전에 옛날 이야기를 했대(웃음). 말을 굉장히 일찍 깼다는 얘기지. 부모님한테 물려받았는지 말솜씨는 자매가 다 똑같아.

희경 언니가 좀 많이 떠드는 편이야. 어렸을 때부터 고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물어봐. 난 일에 대한 거 빼고는 한번도 언니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데. 하긴 내가 일에 있어서는 언니 말을 기분 나쁠 정도로 잘 듣지. 처음에는 안 하는 것처럼 반항하다가 결국에 따르잖아.

(양희은 씨가 강아지를 돌보러 간 틈을 타서 양희경 씨에게) 언니가 동생처럼 느껴질 때는 없으셨어요?

희경 우리 언니는 마인드가 소녀 같아요. 철없을 때가 많지요. 아이 없이 부부 둘이 살다보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부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물론 작심 3초죠. 난 뭔가 하겠다고 생각하면 실행에 옮기고 나서 밝히는데, 언니는 일단 말이 앞서요.
희경 언니는 내가 행동파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언니가 훨씬 행동파야. 정작 나는 생각은 많지만 행동으로 못 옮기는 반면, 언니는 얘기를 마구 쏟아내는 스타일이지. 양희경 씨의 언니에 대한 회고담은 계속됐다.

희경 언니는 직관력이 뛰어나서 쟤는 뭘 하면 잘하겠다는 걸 잘 알아요. 그 컨설팅 대상 1호가 나 양희경이지. 내가 대학 입시에 계속 떨어져서 그냥 엄마 양장점이나 물려받을까 했는데 언니가 연극영화과 시험을 보라는 거예요. 한번 해본 적도 없는데…. 결국 아는 오빠한테 판토마임을 잠깐 배워서 시험을 봤는데 과 차석(서울예전 연극영화과)으로 들어갔지. 학생시절을 서울예전을 보낸 것,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인연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수업이 오후 6시에나 끝나서, 워크 샵까지 하고 나면 밤 11시. 차가 10시면 끊기거든. 그러면 언니가 명동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날 데리러 오는 거야.

희은 양희경이는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그랬어. 혼자 거울 보면서 얘기하고, 울었다가 웃었다, 이상한 표정 짓고, 그런 거 보면 양희경이 지금 연기를 하는 게 당연한 거야.

희경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고3 언니가 가장, 그리고 고1이었던 내가 집안을 이끄는 주부가 되었어요. 양희은의 빛나는 청바지와 흰 운동화 뒤에는 내가 있었다는 것이지. 그게 지겨워서 도망가다시피 시집을 갔는데, 사실 무덤을 판 거지. 친정보다 나은 시집이 있겠어? 매일 밤 울다가 잠드는 게 일과였어.
결혼할 때도 언니와 함께 대성통곡을 했어. 형 만한 아우 없다고 결국 나만 생각하고 시집을 간 거잖아. 내가 가면 우리 집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은 거지. 결혼식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신혼여행 떠나면서 공항에서 엄청 울었어. 애 아빠가 민망해할 정도였으니까. 남편이 늘 서운해했던 게 그거였어. \'너는 나보다 언니를 더 중히 여기고 언니 말을 더 잘 듣는다\'다는 거.

희은 남편(조중문,54,사업)은 언제나 칼 같은 모니터지(단호하게).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을 지적해주니까 칼이지. 97년부터 작년 7월까지 남편은 류마티스성 관절염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했었어. 계단 내려오는데 20분이 걸리고, 치약을 못 짜서 내가 아침마다 칫솔에 치약을 짜주고…. 그러다 고마운 인연으로 김문호 박사가 잠깐 한국에 다니러 나왔어. 통증에 관심이 많아서 봉독요법을 개발한 미국 의사인데, 다 죽어가던 남편을 6개월 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줬어. 지금은 귀국해서 \'안 아픈 세상\'이라는 병원을 하는데, 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남편이 거기서 행정 일을 맡아보고 있어.

남편의 투병을 지켜보면서 마음 고생이 심하셨겠어요.

희은 그 때 팍삭 늙었지. 뭐. 일 그만 두고 집에 들어 앉아 병자를 돌봐야하나 고민했는데, 도저히 못 그만두겠더라고. 같이 미쳐버릴 것 같았어. 사람 사이에 한계가 그거 아니야? 대신 아파 줄 수가 있어, 죽어줄 수가 있어? 그냥 봐야 하는 거잖아요. 그건 더 괴로워. 나도 두 번의 큰 수술을 하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사람인데, 벌써 그 아픔을 까마득히 잊고 있더라고. 그 일을 통해서 인생의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어졌지. 남편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부부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형성된 것 같아요.

형제가 가까이 있다는 건 마음으로 도움은 되지요. 그런데 걔도 아이들 둘 건사하고 바쁘게 사는데 뭘.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얼마나 아픈지는 같이 사는 우리 친정 엄마와 나 이외에 누가 알아? 사실 밤에 이 사람이 거의 넘어갈 것 같은 모습은 부모, 형제도 모르는 거야.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양희은에게 미미와 보보는 자식과도 같다) 살다보면 자매의 정은 더욱 돈독해지는 듯하다. 97년 이혼으로 혼자된 동생 양희경에게 적극적으로 재혼을 권한 것도 언니 양희은이었다.

양희경 씨 재혼하신 후 생활은 어떠세요?

희경 재혼하고도 특별히 달라진 건 없어. 생활의 변화가 거의 없고. 여느 가정과 똑같아요. 내가 늘 얘기하는데, 연애보다 어려운 건 결혼이고, 결혼보다 어려운 건 이혼이고, 이혼보다 어려운 건 재혼이에요.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만난다는 건 그 순간부터 고통이야.

희은 재혼하고 좋은 점도 얘기해 봐.
희경 좋은 점은 결혼하기 전과 후에 내 생활이 달라진 게 없다는 거. 일하는 거나 사는 거나 생활의 변화가 거의 없고, 늘 남편이 곁에 있어주니까 든든하지. 처음에 남편(김광철?사업)이 가수 양희은은 아는데 내가 누군지 모르더라고. 그래서 이 사람은 선입견이 없이 본연의 양희경을 볼 수 있겠다 싶어 다가갈 수 있었지.

부군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마음이 끌리셨나요.

희경 그 사람은 50대 남자가 가지고 있는 권위의식이 없어요. 난 그러면 못 살거든. 마음이 굉장히 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게 이 사람과 결혼한 가장 큰 이유였어요.

양희경 씨는 따님을 잃고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양희경 씨는 2002년 10월, 남편 김씨가 첫 결혼에서 낳은 딸을 골수암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희경 죽을 때까지 잊혀지겠어요? 자식이 죽으면 가슴속에 묻어둔다고. 나는 그 아이를 직접 낳지 않아 심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아저씨는 좀 괴롭겠어요.

(양희은 씨에게) 동생 중매를 섰는데 양희경 씨가 결혼하셔서 따님을 잃는 아픔을 겪으셨어요. 혹시 미안함 같은 건 없으세요?

희은 내가 왜 미안해. 걔가 그렇게 아플 줄 누가 알았나요. 두 내외가 엄청 고생했지요. 나는 그 아이가 예뻤고,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요.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연기할 우리들

희은 난 소극장 공연이 매회 끝나면 문 앞에서 인사를 해. 일일이 인사하고 눈빛을 맞추면 오늘 공연이 어땠는지를 읽을 수 있거든. 우리 남편은 중,장년층이 와서 눈물 흘리고 가는 걸 보고 “당신 나이에 어디서 이런 사랑을 받겠냐. 사랑 받을 자격이 있나 스스로 물어보고, 그 사랑 되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실천해”라고 말해요.

97년에 \'우리는 한계령을 넘는다\'란 타이틀로 공연할 때였죠. 중소기업을 경영하다 망했다는 한 팬이 \'나는 당신 공연 티켓을 구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내가 35년을 일궈왔던 게 날아가고 6개월 동안 자살만을 생각했는데,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아내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이 표를 구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메모를 남기는 이 순간, 그래도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라는 메모를 받은 적이 있어. 남편이 그걸 보고는 \'이건 정말 기가 막힌 일이고, 기가 막힌 힘\'이라며 이 일 계속하려면 자기 관리 제대로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팬들의 사랑이 나의 에너지원이지.

양희은 씨의 노래 철학은 계속됐다.

희은 난 옛날 것만 갖고 사는 게 제일 싫어. 사람들이 \'내 공연에 이야기 들으러 왔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난 거기서 희망을 봐. 내가 29개의 음반을 냈으면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노래는 30개 안팎인데, 난 안무도 게스트도 없이 혼자 2시간을 하잖아. 그런데 사람들이 오는 이유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얘기는 내가 살아가는 흐름을 타고 언제나 변수가 있으니까 변화를 줄 수 있지. 매번 지금의 얘기에 지금의 노래를 더하는 거야.

요즘 들어 방송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희은 아니요. 근데, 수술하고 난 이후로 사람들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 못하겠어요. 연대나 이름 외우는 게 쉬워서 전공으로 역사학을 택했었는데, 그게 없어지면서 내 인생에 시행착오가 생기는 거 같아.

양희경은 학교를 졸업하고 77년에 시집을 갔지만 남편의 반대로 연기자로서의 일을 접었다가 큰 아들을 출산한 후 82년에 오태석의 작품 \'자아 1122년\'이라는 연극으로 돌아왔다.

희경 \'자아 1122\'를 끝내고, 둘째를 갖는 바람에 주춤하다가 85년에 김성만 선배가 연출하는 \'한씨연대기\'에 캐스팅됐어요. 내가 연기하는 걸 본 적도 없는 김민기 씨가 추천했대. 그때 난 비대한 동네 아줌마였다니까.

그렇게 85년부터 공연을 다시 시작했고, \'한씨 연대기\' 공연을 보러왔던 방송 PD의 소개로 TV출연을 하게 됐어. 라디오는 89년부터 시작했고 98년까지 MBC에서 활동했지. 자유롭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 이후에 라디오 DJ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지요. 한번 그만 두니까 그 지옥 같은 일상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드라마와 연극을 쭉 병행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양희경씨는 언니 못지 않게 노래도 잘 하시기로 유명하신데요.

희경 언니가 이제 자기가 가장노릇 못한다며 유학을 가겠다고 했어. 나에게 가장노릇을 하라는 말만 하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요. 하지만 언니는 유학을 다녀온 후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장이야.

두 분 다 중년이 되셨는데, 어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희은 어렸을 땐 서로 굉장히 밀착이 돼 있었는데, 희경이가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훈련을 했던 것 같아. 내가 시집가고 떠나면서 자기 일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아. 나로부터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한 사람으로 홀로서기까지 힘들었던 것 같아.

희경 예전부터 \'양희은 동생\'이란 말이 싫었냐는 질문이 항상 우스웠어요. 우리는 분야가 달라. 내가 가수였다면 문제가 다르지. 서로 시너지 효과는 낼 수 있어도 갉아먹는 역할을 하지는 않지. 언니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여서 좋은 영향을 받으면 받았지 나쁠 게 뭐 있나.

두 분이 공연 같이 하시는 거 처음이죠? 어느 분이 먼저 제안하신 건가요?

희은 아직은 둘 다 팔팔하니까 나이 들어서 힘에 부치면 둘이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보자고 늘 이야기했지. 근데 이번 공연을 기획한 \'조은 콘서트\'에서 내레이션을 양희경 (그녀는 동생을 부를 때 꼭 성까지 붙여 불렀다)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우리 생각과 맞아떨어진 거지.

희경 2002년인가 한번은 언니 콘서트에 갔는데 뭔가 아쉬운 거야. 사운드는 좋은데 공허함 같은 게 느껴지더군. 공연을 보고 언니에게 내가 코러스를 한다면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지. 근데 그 뒤로는 각자 바빠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통보\'만 받았어. (양희은의 성대모사를 하며) \'야! 너, 4월 30일부터 5월 16일까지 나하고 공연해야 돼\'라고. \'출연료는 얼마얼마 줄게, 더 줘?\' 그러면 난 \'아니\', 그럼 그걸로 이야기 끝. 나에게도 스케줄이란 게 있잖아. 사실 올 8월까지 \'넌센스 잼보리\' 앵콜 공연이 있어서 걱정했거든. 다행히 더블 캐스팅이라 상관없었지만.

뭔가 굉장히 공연이 나올 것 같은데요.

희은 \'울 언니 구식이야기\'란 타이틀로, 양희경이 양희은의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면 내 노래 가운데 테마를 엮어서 노래하는 거지. 그렇게 서로 기대서 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 앞으로 희경이와 음반 작업도 계획하고 있고.

처음으로 언니와 함께 준비하는 공연인데 기대되지 않으세요?

희경 별 기대는 없어. 어려서부터 늘 양희은이 기획하고, 내가 행동파 대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거든. 그때만큼 재미있을까? 구닥다리 이야기라…, 나이 들어서 보면 참 행복했던 시절이네. 우리는 재미있는데 정작 관객들이 재미없어하면 어쩌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라서 좀 걱정되긴 하네.

앞으로 혹 다른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희경 난 계획이라는 게 없어. 연기야 대사 외울 수 있을 때까지 하겠지. 만약 가능하다면 일년에 반만 일하고 싶어요. 나를 위해 시간을 좀 보내고 싶고, 어슬렁거리면서 여행도 다니고 싶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든든함. 닮은듯, 그러면서도 다른 사이좋은 평생 친구 언니 양희은과 동생 양희경이 만들어낼 시너지에 주목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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