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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참 딴따라 송해의 '내 인생 딩동댕'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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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 작성일18-01-12 16:38 조회5,8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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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참 딴따라 송해의 '내 인생 딩동댕' 인기

 

‘딴따라계의 현역 최고참’ 송해 선생(91)이 부른 곡 ‘내 인생 딩동댕’(김태영·이용출 작사 김정호 작곡)과 ‘유랑청춘’(오민석 작사 신재동 작곡)이 뒤늦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16년 말 취입한 ‘내 인생 딩동댕’은 KBS1 TV의 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30년 가까이 맡고 있는 그의 동리연(凍梨宴-구순)을 기념해 헌정된 곡이다.

“산도 넘고 강도 건너/나 여기 서있네/눈도 맞고 비도 맞고/앞만 보고 달려왔었네/지나온 길 생각하면/아쉬움이 너무 많은데/좋은 친구 좋은 이웃/내 곁에 함께 있으니/괜찮아 이만하면 괜찮아/내 인생 딩동댕이야…….”

 

2년 전 부른 ‘유랑청춘’도 함께 히트

1988년 처음 진행을 맡은 이후 30여 년 동안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을 이끌어온 그의 후반기 인생을 축약한 노래가 바로 ‘내 인생 딩동댕’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그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서 진행을 하듯 편하고 구수하면서도 흥겹게 노래해 살가운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그를 ‘영원한 국민 MC’라고 부르지만 사실 송해 선생의 정확한 신분을 설명하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는 명칭이다.

가수로 활동을 시작해 코미디언과 배우로 유명해지고 국민 MC로 우뚝 서는 등 그야말로 만능이어서 그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나는 딴따라다’의 제목처럼 ‘딴따라’라는 명칭이 제일 적합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내 인생 딩동댕’이 그의 인생 후반기를 그린 곡이라면 2015년 부른 ‘유랑청춘’은 그의 일생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그린 곡이라 할 수 있다.

 

작사가, 작곡가와 함께 울음보 터뜨린 ‘유랑청춘’ 이야기

“눈물 어린 툇마루에 손 흔들던 어머니/하늘마저 어두워진 나무리 벌판아/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년/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

통기타 반주로 시작되는 50~60년대의 유행가를 연상시키는 복고적인 트로트. 1·4후퇴로 혼자 남쪽으로 피란을 떠나올 당시 자신을 배웅해주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모곡이다.

그의 평전을 쓴 단국대 오민석 교수가 가사를 쓰고 <전국노래자랑>의 악단장인 작곡가 신재동이 작곡을 했다. 곡이 완성된 후 전화로 들려주면서 두 사람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단다.

송해 선생 자신도 이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울었다고 한다. ‘내 인생 딩동댕’이 간장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 만든 곡이라면 ‘유랑청춘’은 간장과 고추장에 된장과 청양고추까지 버무려 비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진한 여운이 있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송해 선생은 1.4 후퇴 직전 황해도 구월산 북한군 패잔병들로 구성된 빨치산들이 민가로 쳐들어올 때 잡혀가지 않으려고 재령군에 있던 고향집을 떠났다. 툇마루에서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어주던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그것이 마지막 생이별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전국을 돌고 미국과 유럽은 물론 남미 파라과이를 거쳐 2003년 평양까지 찾아가 사회를 보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을 다시 만나기는커녕 소식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당시 북측 관계자의 “선생님 고향에 가보셔야 아무도 없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 모두 이주시킨 지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란 소리를 듣고 누이동생과 어머니 찾기를 슬그머니 단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혹시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만나게 되면 선물하려고 가져간 한복을 숙소를 관리하던 아주머니에게 선사하고 말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해주예술전문학교 성악과를 나온 송해 선생은 1955년 창공악극단에 가수로 입단하며 구순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친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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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길’과 ‘송해공원’ 그리고 연예인생 집대성한 CD세트

코미디를 하거나 MC를 보면서도 흘러간 가요를 노래해 박수갈채를 받는 등 남다른 가창력을 지닌 송해 선생이 자신의 노래를 처음 취입한 것은 60세가 되던 1987년.

'망향가'(김병걸 작사 정주희 작곡)라는 곡이었는데 '백마야 우지마라' '애수의 소야곡' '아주까리 등불' 등 자신의 애창곡들과 함께 취입해 서울음반을 통해 "송해 독집"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또 2006년에는 <전국노래자랑>의 심사를 맡았던 작곡가 신대성의 권유로 ‘나팔꽃 인생’(김병걸 작사 신대성 작곡)을 취입했다. 팬들이 '송해쏭'으로도 부르는 바로 그 곡이다.

작곡가 신대성은 이 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에게 추억의 노래들을 취입하자고 제의했다. 그 바람에 이틀 동안 ‘이별의 부산정거장’ ‘대지의 항구’ ‘한 많은 대동강’ ‘꿈에 본 내 고향’ 등 추억의 명곡 108개를 일사천리로 불러 취입을 했다.

미산음반은 최근 송해 선생의 곡 ‘내 인생 딩동댕’ ‘유랑청춘’ ‘나팔꽃 인생’을 비롯해 추억의 가요 등 108곡을 CD 6장에 담은 <나팔꽃 인생 송해 아흔 즈음에…>를 내놓았다. 한국연예계의 산 역사인 송해 선생이 연예계의 역사와도 같은 가요계의 명곡들을 모두 노래한 앨범을 완성시킨 것.

2016년 구순을 한 해 앞둔 송해 선생에게 연이어 좋은 일들이 생겼다. 종로문화원이 종로구 수표로 1.44㎞ 가운데 종로 2가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240m를 ‘송해길’로 이름 붙인데 이어 2017년 9월에는 사단법인 송해길보존회가 발족되고 송해가요제까지 열렸다.

또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2016년 여름 송해 선생의 처가(부인 석옥이 여사 친정)가 있는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옥연지 일대를 송해공원으로 조성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발전시켰다.

달성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17년 말 수중다리 백세교와 둘레길 금굴 등이 있는 이 송해공원에 용알조명과 은하수조명을 추가 조성해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볼거리와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한국원로연예인상록회의 사무실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선후배 연예인들의 뒷바라지를 해오며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던 낙원동 일대가 ‘송해길’로 불리고, 처가가 있는 달성군 옥연지 일대가 ‘송해공원’으로 지정돼 관광명소로 탈바꿈했으니 “이만하면 괜찮아 내 인생 딩동댕이야!”라고 노래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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